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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6 (10:40:34)
제 94 주  가톨릭 서간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유다서.요한 1. 2. 3 서)


1. 가톨릭 서간 혹은 공동서간(共同書簡)이란 어떤 서간을 말합니까?1)

☞ 가톨릭 서간이란 야고보서, 베드로1, 2서, 요한 1,2,3서, 유다서 등 일곱  편지를 일컫는 말로 4세기 초엽 교회 역사가 가이사리아의 에우세비오에 의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필명(筆名)으로 전해오는 편지 13편은 반드시 어느 특정 교회나 어느 특정 교우 앞으로 쓴 것인데 비해, 위의 일곱 편지는 모든 그리스도 교회 모든 교우들을 상대로 썼다해서 ‘모든, 보편적, 세계적’을 뜻하는 그리스어 ‘가톨릭’(catholic)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가톨릭 서간 가운데 요한 2,3서는 특정 수신인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곧 요한 2서는 ‘원로’가 ‘선택받은 귀부인과 그분 자녀들에게’보낸 것으로, 풀이하면 요한계 원로가 요한계 어느 한 교회와 그 교회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뜻입니다. 요한3서는 ‘원로’가 또 다른 요한계 교회의 ‘가이오’라는 열심한 교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일곱 서간을 가톨릭 서간이라고 부른 둘째 이유는, 이 서간들은 위작(僞作)이 아니고 정경(正經-canon)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톨릭’이란 낱말은 ‘정통적, 참된’의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신교에선 ‘가톨릭 서간’ 대신 ‘공동서신’이라 합니다.


2. 야고보서는 어떤 성서입니까?

☞ 야고보서는 2,14-26(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을 중심으로 해서 엮어져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구원받고자 한다면 선행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신앙만으로는 충분하지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자기 행실이야 어떻든 자동적으로 구원받으리라는 생각은 매우 안일한 것입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지적(知的)인 동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삶 자체에 아직 힘을 미치지 못하는 그런 것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그런 믿음은 죽은 것이다”고 단언합니다. 사실 사도 바오로도 산 믿음은 행실이 따르고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며(갈라 5,6), 행실과 실생활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보여주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3,28)와 갈라디아서(2,16)에서 사도 바오로는 인간이 하느님 대전에 의로워지는 것은 선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죄의 상태에서 은총의 상태로 건너감이 사람의 공적(功績)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은총은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은총은 사람에게 새 생명과 활력의 원리가 되어서 그리스도교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게 만듭니다. 신앙이 우리의 초자연적 생명의 씨앗이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뿌리임이 사실이라면, 그 씨앗과 뿌리가 나무로 자라고 열매를 맺지 못할 때에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야고보서는 강조합니다. 믿음의 내용은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야고 1,22-27; 마태 7,21-27). 이처럼 야고보서는 실천을 매우 강조하는 성서입니다.  


3. 야고보서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 신약성서에는 “작은 야고보”(마르15,40)를 제외하고도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등장하는 데 그 중에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장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차야고보)는 열두 제자 단에 속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동기간인 야고보가 있습니다(마르 6,3; 갈라 1,19).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를 보면 예수님과 동기간인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등장합니다(갈라 1,19; 2,9-12; 사도 12,17). 이 세 명의 야고보중에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44년경 헤로데 아그리빠1세에 의해 순교하였기 때문에 야고보서의 저자가 될 수 없습니다(사도 12,1-2).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 역시 본서의 저자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사말 가운데 사도라는 명칭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오(260-339)와 성 예로니모(343-420)는 주님의 동기 야고보가 이 야고보서를 썼으리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갈릴래아에서 자라난 유다인으로서 이 야고보서와 같은 세련된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모세의 율법에 충실하려 애썼던 야고보(갈라 2,11-13)와는 달리 율법문제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어떤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야고보의 이름을 빌려 집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야고보서가 성령의 영감에 의하여 엮어진 초대교회의 귀중한 문헌이라는 사실입니다.

4. 야고보서의 수신인은 누구입니까?

☞ 야고보서의 수신인은 서두의 인사말을 볼 때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입니다. ‘열두 지파’는 본래 야곱의 열두 아들을 선조로 둔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팔레스티나를 떠나 도처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인 교포에게 보내진 회람문서인 셈입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교가 새 이스라엘로 자처하였으므로(갈라 3,7-9; 6, 16), 야고보서의 수신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여겨집니다.


5. 야고보서의 집필동기는 무엇입니까?

서기 80-90년 시기는 선교의 주역이었던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 복음의 생명력이 떨어지고 세속생활의 타성에 젖어들 무렵이었습니다. 따라서 종말론적 희망을 갖고 이루어야 할 평등 공동체의 이상도 퇴색하여 교회 안에서도 빈부차별이 나타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신앙생활을 이상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직접 실천에 옮길 것을 촉구하기 위해, 신앙생활 전반에 걸친 폭 넓은 주제를 일정한 순서 없이 훈계조로 집필하였습니다.  


6. 야고보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 ① 1,1 : 인사말  ② 1,2-18  : 시련과 지혜   ③ 1,19-27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라.

   ④ 2,1-12  :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말며 사랑의 율법을 이루자.  ⑤ 2,13 : 자비의 필요성

   ⑥ 2,14-26 : 믿음과 행함   ⑦ 3,1-12  : 혀를 조심하라

   ⑧ 3,13-18 : 땅의 지혜를 버리고 하늘의 지혜룰  구하라.

   ⑨ 4,1-10 : 하느님으로부터만 오는 평화를 추구하라. ⑩ 4,11-12 : 서로 비방하지 말라.    

   ⑪ 4,13-16 : 장사꾼들의 계획은 하느님께 달려있다.  ⑫ 4,17 : 올바른 행위의 필요성

   ⑬ 5,1-6    : 부자들에 대한 경고    ⑭ 5,7-11 : 주님이 오시니 인내롭게 기다려라.

   ⑮ 5,12 : 맹세하지 말라.    ⑯ 5,13-18 : 기도의 능력

   ⑰ 5,19-20  : 그릇된 형제들에 대한 관심 


7. 야고보서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현대에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야고보서는 깊이 재음미되어야 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한 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 있으면 되고, 선행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개신교주장). 심지어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신약성서 목록에서 빼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선행을 배제한다는 것은 성서 그 어디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분명히 반(反) 그리스도교적인 주장입니다. 그야말로 행동과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신앙인임을 자처하면서도 신앙이 없는 이들과 똑같이, 아니면 거의 비슷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종합하면 야고보서는 루터가 말한 것처럼 ‘복음적 특성을 전혀 간직하지 못한 지푸라기 같은 서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믿음과 사랑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점에서 유다교-그리스도교 전통과 복음서 전승을 충실하게 반영한 성서라고 할 수 있다.

  

 * 그 외 더 깊은 신학적 특성에 관하여는 정태현· 한님 성서 연구소,⌜거룩한 독서 3⌟(시서, 지혜서, 서간)(성바오로 딸, 2004),316-319.쪽 참조.


II. 베드로 1, 2서.

1. 베드로 1서와 2서는 둘 다 베드로 사도의 글이 아니라, 사도의 이름을 빌려 쓴 차명서간이다. 그리고 두 서간은 저자와 저작시기, 문체와 문학양식, 내용에서 서로 완전히 다르다.


2. 베드로 1서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저자는 1,1의 인사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로 자신을 밝히며, 5,1절에서는 자신을 “원로”이며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으로서 장차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자”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실제 저자를 베드로 사도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고, 여러 정황으로 보아서 저자는 로마교회의 신자로서 사도 베드로가 64년경 로마에서 순교할 때, 그곳에서 형성된 베드로계 그리스도 공동체에 속해있던 사람으로서, 위기에 처한 교회들을 격려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베드로 1서를 집필하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저자는 베드로 사도의 사상을 잘 이어받으면서 사도 바오로 계열의 전승뿐 아니라 팔레스티나(유대교) 교회의 전승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 판단됨.2)


3. 베드로 1서의 집필동기는 무엇입니까?

☞ 베드로1서 저자는 5장12절에서 이 글을 쓴 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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